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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눈깜짝할 사이 텐트 전체가 불길에 휩싸입니다.
어른 손에 이끌려 겨우 빠져나온 남자아이 한명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땅바닥에 주저앉습니다.

[인터뷰]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서 눈을 떴어요.
텐트 천장을 봤는데 불길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정진항]
그때 그 재난 정진항입니다.
재난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오는데요.
봄기운이 막 감돌기 시작하던 3월, 자녀들과 함께 가족 동반여행을 떠났던 중학교 동창생의 비극은 행선지를 바꾸며 시작됐습니다.
평소에도 친하게 왕래하며 지냈던 두 가족은 강원도의 한 리조트로 여행을 가려다가 집에서 가까운 강화도의 한 글램핑장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는데요.
텐트와 취사도구, TV 등 각종 편의시설이 제공돼 캠핑 장비가 없어도 즐길 수 있는 글램핑.
하지만 화려하고 평화로운 풍경 속엔 사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깊이 잠든 새벽 2시 경, 캠핑장에 있던 인디언 텐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에 바로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들이 달려왔지만 당시, 제대로 작동된 소화기는 하나도 없었다고 하는데요.
텐트는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모두 타버렸습니다.
이 사고로 함께 가족 여행을 왔던 중학교 동창생 천모씨와 이모씨, 그리고 겨우 11살, 8살, 6살이던 그들의 자녀 3명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손쓸 틈 없이 안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이 사고는 지난 2015년 강화도의 한 글램핑장에서 발생한 사고였는데요.
도대체 왜 이렇게 순식간에 화재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당시 화재의 원인은 전기적 요인으로 텐트 내부에 설치된 난방용 전기 패널에서 불이 시작되었는데요, 이 전기 패널은 안전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유는 펜션 업체가 등록되지 않은 글램핑장을 운영하면서 화재 방지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난 2016년 캠핑장 운영 관련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너무나 큰 희생을 치룬 후였습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지방자치단체와 관계기관 등이 합동 단속을 펼치면서 불법·무허가 야영장과 시설들에 대해서 과태료 처분과 원상복구 명령까지 강력한 행정명령을 진행했고, 주기적인 지도점검과 단속으로 야영장 환경이 상당부분 개선됐습니다.
아무리 안전시설을 강화하고 법과 제도를 정비한다고 해도 만에 하나 화재의 위험은 있기 마련입니다.
때문에 개인의 안전의식도 중요한데요, 캠핑할 때 가스 중독에 대비한 일산화탄소 경보기, 텐트 내부에서 화재 시 신속한 탈출을 위한 커트칼 등 안전 장비를 챙기고 떠나면 좋겠습니다. 

때로는 아무리 재난에 대비해도 재난의 한 가운데에 들어설 때가 있습니다.
2004년 3월에 찾아온 눈은 겨울왕국과 거리가 먼 재난의 이야기가 됩니다.
224명의 운전자들은 집단소송을 걸었고, 2007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각각 30만원에서 50만 원씩의 손해배상이 확정됐습니다.
이른바 ‘고속도로 폭설대란’ 사건인데요.
왜 운전자들은 법정으로 가야했을까요?
지난 2004년 3월 5일 오전. 충청권 지역에 갑자기 내린 폭설로 경부 및 중부고속도로 기능이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폭설로 인해 고속도로 일부 구간이 정체되며 마비징후가 나타난 지 7시간 뒤에서야 교통통제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게 되었는데요.
차량 1만여 대가 고속도로 위에서 고립되면서 차에 타고 있던 20,300여 명이 최장 37시간 동안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교통대란이 발생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악천후 속에서도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구호 활동이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인근 군 병력들은 고립된 이들을 위해 구보로 약 10km를 행진해 승객들에게 구호 물품을 나눠주었고요, 소방대원들도 역시 빵과 음료, 물 등을 전달하며 적극적인 구호활동을 펼친 덕분에 별다른 인명사고 없이 버틸 수 있었습니다.
2004년 중부지방 교통대란의 경우 100년 만의 폭설로 인한 자연재해라고는 하지만 과거 경험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교통대란이 예견됐음에도 관계기관의 안이한 대응으로 제설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운전자들의 집단소송까지 발생한 것인데요.
이후, 효율적인 재난관리를 위한 법과 제도가 개선됐으며 신속한 재난대응을 위한 관계기관간 핫라인이 개설돼 위기 상황에 대처해 나가고 있습니다.
2004년 3월에 내린 중부 지방 폭설로 인한 피해는 고속도로에서만 그친 것이 아닙니다.
대전, 청주 등 충청권 지역에 집을 비롯한 하우스 등 각종 시설이 무너지고, 시내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중부지방 폭설로 인해 주택과 공공시설 등이 파손되면서 약 6,734억 원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3월의 폭설이라니~ 재난은 언제 어느 순간 찾아올지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초반, 부산시 구포역 인근에선 비오는 날 밤이면 귀신이 나타난다는 여러 괴담이 퍼졌습니다.
그 누구도 귀신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주변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는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 우리 인간으로부터 발생한 사고였다는 점입니다.
지난 1993년 3월 28일, 12시 45분에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출발한 무궁화호 제117 열차가 물금역을 통과하여 가던 중 선로 100m앞에 펼쳐진 기막힌 위험에 깜짝 놀라 급제동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동거리가 너무 짧아서 위험을 피할 수 없었는데요, 그 위험은 바로 선로지반 함몰이었습니다.
철로가 4-5미터 아래 흙속에 파묻혀서 열차는 붕괴된 선로를 피하지 못해 전복됐고 이 사고로 78명이 사망하고 198명이 부상을 당했는데요.
당시 전체 승객이 600여명이었음을 감안하면 3명 중에 1명이 다치거나 생명을 잃은 것으로 '구포역 기차 전복사고'는 우리나라 사상 최악의 기차사고로 기록됐습니다.
시속 85km로 달리던 차량이 비상제동을 하였지만 기관차 및 발전차, 객차 등 총 4량이 탈선 및 전복되었습니다.
사상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6호차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20대의 남매는 『사고 직후에 주위에 쓰러져 있는 20여구의 시체를 넘어서 탈선한 열차에서 탈출했지만 주변에 구조 요청할 사람이 없어서 구포역인근 성심병원까지 사력을 다해 달렸다』고 당시의 참담함을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선로 붕괴의 원인은 건설사의 무단 발파작업 때문이었는데요.
철도 인근 공사는 관련 기관의 허가 없이는 진행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절차가 생략되며 지하 전력구를 설치하기 위한 발파작업이 시행됨으로써 선로 침하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열차 전복 사고로 이어지면서 안타깝게도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재난이 됐습니다.
구포역 인근 괴담은 이제 옛이야기가 됐고, 사고도 잊혀져가고 있지만 당시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겐 여전히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데요.
사소하게 놓쳐버린 안전의 고리 하나가 얼마나 큰 위험을 초래하는지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3월의 재난은 설마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인식으로 발생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요.
안전과 관련된 문제만큼은 대충 넘어가도 괜찮겠지 하는 생각! 안전 불감증은 금물입니다.   
예기치 않은 순간 찾아오는 재난을 피할 수 없다 해도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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