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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속 안전!(우리나라 최초의 소방대 금화도감)

2016-06-10 13:53:35.0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은, 역사 속 재난과 안전 이야기.
큰 별 최태성샘이 재미있고 쉽게 알려드립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대를 아시나요? 바로 조선시대 세종, 금화도감입니다.
조선시대에는 화재에 어떻게 대응했는지,그리고 최초의 소방대 금화도감 이야기를 최태성샘과 함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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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 속 재난 사건을 통해 안전 의식의 중요성을 알려드릴 큰별샘 최태성입니다. 
역사와 재난! 거리가 멀어 보이는 두 단어죠?
그러나 역사 속 재난 속에는 안전을 사수하기 위한 역사적 궤적이 있습니다
아무도, 학교에서조차도 잘 알려드리지 않은 그 궤적을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역사 속 재난, 사건 파일! 오늘의 사건은 우리에게 익숙한 세종대왕 재위 시기 벌어진 화재 사건입니다
1426년 2월 15일부터 시작된 이틀간의 화재 발화점은 수도인 한양 남부의 한 가옥 2월 15일 낮 한성 남부의 한 가옥에서 처음 치솟은 불길은 때마침 세차게 불어온 서북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졌습니다. 대부분 집들이 초목으로 지어졌고 닥지닥지 붙어 있는 상태여서 도성 안은 금세 불바다로 변했는데요 

이 급박한 상황에 세종대왕은 과연 어디에 계셨을까요? 궁금하시죠? 강원도에 계셨습니다. 당시 조선은 가뭄 피해가 아주 극심했거든요 
세종대왕은 강원도에 현장 시찰을 나와 계셨던 거죠 . 한양에서 대형 화재로 여염집 6분의 1이 완전히 타버리고, 3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은, 화재로 피해를 본 가구 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장년과 어린이를 나눠 구제하라는 대책을 주문합니다.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후 가장 컸던 화마! 화마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방화였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방화범들에게 사형을 언도합니다

화마와의 전쟁을 선포한 세종대왕! 이 과정에서 탄생한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대! 금화 도감을 불러봅니다
불을 금하다 = ‘금화’                                       

1426년 즉위 8년을 맞은 세종대왕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을까요? 한글 창제, 점심 메뉴, 가뭄? 정답은 예상하셨겠지만 화재였습니다. 특히 한양 도성 안 화재였죠. 이 화재는 주로 사람들의 부주의보다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도적들에 의해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것은 한양 도성 안에 상인들이 많이 거주하였을 뿐 아니라, 궁궐 주변으로 관료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치품 등 재물이 풍부했죠. 도적들의 표적이 되었으며, 그로 인한 방화가 다수 나타난 것입니다.
이에 세종대왕은 국가에서의 화재예방 대책과 더불어, 불을 막는 금화를 담당하는 전문 관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죠

조선 사람들에게 불이란 어떻게 다가올까요? 불은 무서운 재앙이었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불을 일으키는 귀신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귀신 막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설치했습니다

이거 어디서 보셨어요? 광화문, 경복궁 있잖아요?  광화문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있는 해치입니다. 옛날엔 해태라고도 불렸었죠? 
서울 남쪽에 있는 관악산. 반포대교를 건너실 때 관악산 봉우리를 한번 올려다보세요 무엇처럼 보일까요? 
무언가 불타고 있는 모습 비슷하지 않나요? 바로 이 봉우리가 불꽃 형상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이 관악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물의 신이라는 해치를 광화문 앞에 세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치를 보면서 광화문을 통과해 경복궁 근정전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런 게 건물 옆에 있습니다. 이거는 또 뭘까요?
이것은요. 바로 드무입니다. 좀 낯선 용어죠? 이 드무에는 물을 담아뒀는데요. 불 끌 때 쓰려고 물을 담아두었을까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급하면 불을 꺼야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것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큽니다

화마, 불귀신이 불을 내러 궁궐에 들어옵니다. 들어와 가지고 둘러보고 있는데, 드무를 본거죠. 드무를 보니까 그 안에 너무나도 무서운 귀신이 자기를 노려보고 있는 거예요.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을 가게 되는 것이죠.  사실 그 모습은 어떤 모습이에요?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이잖아요. 그렇죠?  어쨌거나 이런 것들을 설치했다는 것. 즉, 해치나 드무의 상징성을 통해서 화재가 조선 사람들에게 정말 얼마나 큰 두려움이었는지 이해가  되시죠? 
그러나 조선 사람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진짜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안전 시스템이었겠죠
백성의 생명이 애석하다는 이조의 보고에 세종은 화재 방지 전담 조직을 만들도록 지시합니다 이른바 조선 소방대 ‘금화도감’이 출범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응답하라! 우리나라 최초 소방대 ‘금화도감’                     ST

자, 그럼 조선의 소방대 금화도감은 과연 어떤 일을 했을까요? 그들의 업무 내용을 한번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방화범 고발자 포상. 방화범을 고발한 사람들에게 포상하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자, 방화범을 고발한 자. 어떤 포상을 받았을까요? 천민은 양민으로 신분이 올라갔고, 양민은 관직을  하사받습니다.  방화범을 고발하면 이 엄청난 포상을 받게 됩니다

자, 그럼 두 번째 일은 무엇일까요? 주택과 도로의 정비였습니다.  지금하고 비교하면 바로 이해가 되실 텐데요 자, 한번 지금 볼게요.
지금도 이렇게 화재가 났을 경우에 소방차가  진입할 수 있는 도로 확보. 너무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조선 시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특히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한성부내 인구와 가옥이 증가하거든요.  대부분은 초가집 형태였습니다
빼곡하게 옹기종기 붙어있는 초가집들.  어찌해야 할까, 불나면 걱정이 너무 커질 것 같아요. 금화도감에서는 초가지붕을 기와지붕으로 개량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는 그런 모습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 세 번째 업무. 방화수의 설치. 불 끄는 물이요.   화재에 쓸 방화수. 이걸 어디에 설치했을까요?  궁궐에는 연못을 만들었고, 공공건물과 민가에는  각 처에 우물과 물독을 설치합니다 자, 그러면 이렇게 조선의 소방대 금화도감이 설치가 되었는데요.  거기서 근무하는 소방관을 뭐라고 불렀을까요? 맨 처음에는 금화도감이니까 금화도감에서 근무하는 소방관, 그래서 금화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세조 때 조직이 확대가 되면서 멸화군으로 불립니다. 이 멸화군은 50명 정도로 구성이 됩니다

자 그렇다면 멸화군, 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불을 멸하는 장비.  멸화 장비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멸화군, 조선시대 멸화군은 과연 어떤 장비를 가지고 있었을까요? 

정답 나갑니다. 도끼, 쇠갈고리, 밧줄 등이었습니다.  멸화군의 실질적 임무는 불을 끄는 것도 있었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불이 번지는 것을 막는  것이었어요. 도끼와 쇠갈고리는 불이 붙은 건물을 무너뜨리는 기능을 하는 것이었죠.
물론, 불이 확 번지지 않은 경우는 물에 적신 천 덩어리, 이걸 멸화자라고 하는데요. 이 멸화자를 장대에 쭉  끼워 발화점에 대서 끌 때 활용합니다

대화재. 이 위기 속에서 탄생한 조선 소방대 ‘금화도감’ 50명으로 구성된 조선 소방관 멸화군. 현재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해 4만여 명의 소방관이 화재재난에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금화도감과 현재의 소방대 조선의 멸화군과 현재의 소방관 탄생 배경과 조직, 운영 방식은 달랐지만 언제나 우리를 화재로부터 지켜주었던 그 조직과 그 사람들 이 모든 분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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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