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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성쌤의 역사 속 재난안전!더보기
거상 김만덕이 처음으로 제주도를 떠난 이유, 바로 정조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요~
김만덕이 정조를 만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김만덕과 재난 극복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큰별 최태성쌤의 역사 속 재난안전과 함께 하세요~
영상대본
안녕하세요. 역사 속 재난 사건을 통해 안전 의식의 중요성을 알려드릴 큰별샘 최태성입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평범한 일상을 되찾는 과정이 바로 재난 극복인데요. 이 재난 극복은 언제나 감동적인 이야기를 낳습니다. 자, 오늘은 재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마저 극복한 역사 속 인물을 소개하려 합니다. 이 거상 김만덕은 제주도 여성인데요. 거상이라는 닉네임의 느낌과는 다르게 그녀는 평생 제주도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하네요? 아! 딱 한 번! 그녀가 제주도 밖으로 나와 수도인 한양까지 온 일이 한번 있긴 있었어요. 바로 18세기 조선 후기 군주인 정조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요. 그녀의 나이 59세 때의 일이었죠. 자 이 재난과 김만덕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궁금하시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김만덕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제가 준비했습니다. 그녀는 말이죠? 김만덕은요 1739년 영조 때 태어났습니다. 어린 김만덕은 생각했겠죠. 자신도 여염집 평범한 아녀자의 삶을 살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평범하지 못했습니다. 12세 되던 해 부모님의 사망으로 형제들과도 헤어지게 된 그녀! 어린 그녀는 생계를 위해 기방, 그 기방에 얹혀살게 되죠. 여성이라는 태생적 한계와 또 이 기방에 살고 있는 기생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갖게 된 김만덕. 게다가 그녀가 사는 곳은 제주도! 제주도 여성은요 육지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출륙 금지령’이 있었는데요. ‘출륙 금지령’은 당시 제주도에서 육지로 이주하는 이가 증가하면서 제주를 방어할 인력이 줄어들자 인조 이후 생겨난 법입니다. 태생적 한계, 신분의 한계, 지역적 한계. 와 정말 한계 많죠? 한계투성이였던 삶. 그러나 그녀는 주어진 것에 굴하지 않고 유통업으로 이 부를 축적하였고, 거상이 됩니다. 게다가 1762년 영조 26년, 관가에 호소를 해가지고요, 양민 신분을 되찾기까지 합니다. 조선 시대, 여성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상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부를 쌓고, 엄격한 신분제까지 뛰어넘은 그녀!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과 한계를 극복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를 정약용, 체제공, 박제가 등 당시 사회 지도층이 기록을 통해 입을 모아 칭송을 합니다. 1794년의 제주도는요, ‘대기근’이라는 재난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1792년부터 95년까지의 흉년으로 제주 사람들은 하나둘씩 쓰러져 갔죠. 흉년이 어찌나 심했던지 1793년 ‘정조실록’에는 장령 강봉서가 정조에게 이를 상소하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제주도에는 여러 차례 흉년이 들었지만, 지난해처럼 추수할 것이 전혀 없었던 것은 전에 없는 일입니다.’ ‘정조실록’에는 큰바람이 불어 내년 봄이 되면 금년보다 배로 굶주릴 것이라는 묘사까지 나오는데요. 흉년에 태풍 피해까지 더해진 안타까운 상황을 짐작하실 수 있겠죠? 이에 정조는요 제주도에 1795년 10월부터 1796년 4월까지 총 35,123석의 구호 식량을 보냅니다. 이 소식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제주도민에게 큰 희망을 주게 되었는데요. 그러나 아 정말.. 구호 식량이 오는 과정에서요 11,000석을 실은 배가 태풍을 만나 파선이 돼요.. ‘낱알 하나가 천금과 맞먹던’ 당시의 제주도민들 얼마나 실망하고 얼마나 절망했겠습니까.. 제주도민의 30%가 흉년과 굶주림으로 죽어 나가던 그때! 김만덕이 이제 생각을 한 거에요. 내년 봄이면 제주도는 죽음의 섬이 된다. 부모를 여의고 혼자가 된 내가 이렇게 잘살게 된 것은 오로지 주위 사람들의 은덕이다. 지금이 그 은혜를 갚을 때다. 내가 저 굶주려 고통받는 사람들을 살리고자 하니, 이 돈으로 빠른 시일 내 육지로 가서 양곡을 구하여 오세요. 자신의 재산으로 양곡을 사들여, 삼성혈과 관덕정 앞에 가마솥 10여 개를 쫘아악~ 걸어 이웃을 구휼한 김만덕. 야.. 대단하죠?! 그 그림 그려지시죠? 조선 후기의 문신 이희발은 ‘만덕전’에 ‘저축하였던 6백 곡을 내놓아 진휼하여 온 고을의 백성 열흘의 목숨을 연장시켰다’라고 기록했는데요. 지금으로 치자면 대략 80kg 쌀을 기준으로 할 때 600가마니 정도를 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양이 당시 제주도민이 열흘을 살 수 있는 분량이었다고 하니, 역시 거상! 통 큰 김만덕의 통 큰 기부는 당시에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것이죠. 당시 사람들에게는 기이한 일로 여겨졌던 김만덕의 기부. 장안의 화제 인물로 부각된 김만덕은 드디어 정조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너는 한낱 여자의 몸으로 의기 심을 발하여 천백여 명의 기민을 구호하여 귀중한 인명을 살렸으니 참으로 기특한 일이다. 이렇게 정조가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조는 친히 김만덕의 소원을 또 들어주고자 하죠.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임금까지 알현하게 된 김만덕! 그녀의 소원은? 다른 소원은 없으나 천하 명산인 금강산 1만 2천 봉을 구경할 수 있다면 한이 없겠습니다. 하하하 금강산 구경을 한번 관광을 가보고 싶으셨네요. 그죠? 당시 제주 여성은 이룰 수 없던 그 꿈을! 정조는 이루어 줍니다. 김만덕을 칭송했던 정조는 ‘재난 극복’에 관심이 많은 임금이었는데요. 시문집 ‘홍재전서’를 통해 재난에 대한 정조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으니 곤경에 빠진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백성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정조는 재난을 극복할 국가적 매뉴얼을 만들어 냅니다. 그것이 바로 ‘상황판’인데요. 상황판 정조는 침실 벽에 재해를 입은 지역을 세 등급으로 나누어 고을의 수령 이름을 딱 써놓고요, 세금을 감면하거나 구휼을 마칠 때마다 그 위에 기록했다고 합니다. ‘상황판’을 통해 전국의 재난 상황을 체계적으로 한눈에 관리했던 것이죠. 전국에서 일어나는 재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했던 정조의 상황판! 이 역활 지금 어디서 할까요? 현재는 국민안전처가 일일 상황보고 및 안전관리체계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죠. 재난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정조와 김만덕은 지금의 우리도 감동할 만한 ‘재난 극복 드라마’를 남겼습니다. 정조와 김만덕의 재난 극복 드라마보다 더 감동적이고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드라마를 국민안전처와 현재의 대한민국이 만들어나갈 수 있겠죠? 인생의 위기인 재난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마저 극복한 김만덕! 금강산을 두루 구경하고 제주도로 돌아온 그녀는 7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보다 남을 먼저 돌아볼 수 있는 용기일 겁니다. 신분과 성별의 한계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용기를 보여준 김만덕! 진보적인 재난 대응 매뉴얼 구축을 통해 백성을 사랑하고자 했던 정조! 두 사람의 용기와 정신을 본받는다면 공동체에 어떠한 위기가 닥쳐도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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