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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가 나타났다?! 과거의 재난사례와 극복방법은?

2016-11-08 09:04:01.0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속 안전!
혹시 호환이나 황충을 들어보셨나요? 지금은 없지만 예전엔 우리 선조들을 위협했던 재난인데요,
과거에 우리를 위협했던 재난은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선조들이 취했던 방법은 무엇이었는지
큰별쌤의 재밌는 역사 속 이야기와 함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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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역사 속 재난 사건을 통해 안전 의식의 중요성을 알려드릴 큰별샘 최태성입니다. 
재난에 대처하는 사회적, 과학적 시스템이 갖춰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역사 속에는 있지만, 현대에는 잘 일어나지 않는 재난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전쟁 또한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될 역사 속 재난 중 하나일 텐데요. 

오늘은 역사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재난 이야기를 해보려합니다. 
이름하여 현대인은 알랑가 몰라!  역사 속 재난 이야기 베스트 쓰리(3)! 

지금은 보기 힘든 재난! 그 첫 번째 키워드는 바로 호랑이입니다! 

호랑이가 나타났다! 
누군가 이렇게 외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마 진짜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여겨 도망치실 분은 없을 겁니다. 누군가의 장난이겠거니, 하겠죠. 그러나 호랑이에 의한 재난은 우리  한반도에서 정말 흔한 일이었다고 하네요. 믿겨지세요. 여러분들....

잦은 호랑이의 습격에 성종은 1486년 ‘민가에서 덫으로 호랑이를 잡는 자에게 면포 3필과 부역감면 1년의 혜택을 준다’는 ‘호랑이 퇴치 법안’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더불어 호랑이의 피해를 입은 각 고을의 수령 및 관리들에게 책임을 물었는데요. 한 해 동안 호랑이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고을 안에 한 사람 이상이 되면, 그 고을의 수령은 파출하고 담당 관리들은 곤장 100대로 다스렸다고 하네요. 누구 때문에... 호랑이 때문에...이렇게 과한 처벌은 호랑이로 인한 피해가 적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호랑이는 대개 자기 서식지인 산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먹이가 부족할 때는 민가까지 내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요. 
호랑이 입장에서는 어쩔 수없는 처사였지만, 민가로 내려온 호랑이, 그걸 바라본 사람...공포죠. 공포...먹이를 찾아 민가로 내려온 호랑이에 의하여 사람이나 가축이 해를 입는 재난을 일컬어바로 ‘호환’이라고 불렀습니다. 

현대인은 겪기 힘든 재난인 호환! 세종 2년 6월 12일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안동에서 수군으로 일하던 정구지라는 남자가 어느 날 밤, 호랑이에게 물려 가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에 정구지의 아내와 두 딸은 몽둥이로 호랑이를 때려 정구지를 구해내는데요! 호랑이를 세 여인이 때려잡다니! 가장을 구하고자 한 가족의 사랑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결국 정구지는 구출된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답니다.  ‘동국세시기’에는  ‘민가의 벽에 닭이나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재앙과 역병을 물리치고자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두려워하면서도 숭배하였습니다. 

한반도 호랑이는 역사 속에나 존재하는 전설적 동물로 남았고,  호랑이로 인한 재난, ‘호환’은  현대인에게 전래동화에나 나올법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호랑이에 의한 재난이 현대에 벌어진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요. 

최태성 역사 속 재난 이야기!그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바로 메뚜기인데요! 

오늘날에도 메뚜기떼의 습격이 종종 벌어지긴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심한 공포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역사 속에서 메뚜기는 호랑이 못지않게 위험한 존재였기 때문이죠. 여러분 상상이 가세요...메뚜기와 호랑이...
메뚜기는 한자어로 황충이라 불립니다. 황충에는 메뚜기뿐 아니라 풀무치와 여치 종류도 포함되는데요.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시대까지, 이 황충에 의한 피해의 기록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조선시대에 그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피해를 막고자 세종대왕은 황충이 처음 나오는 상황을 조사해 아뢰도록 하지만, 과학적이고 근본적인 대책이 없었던 조선시대에는 일일이 하나씩 잡아 없애는 것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는 지역별 해충방제 책임이 있는 17개 시도 지자체와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해 행정자치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등 관계부처 담당자들이 모기방역대책을 논의하는 등. 모기를 포함한 해충에 의한 재난 관리에 힘쓰고 있는데요. 

현대와는 달리 조선시대에는 특별한 퇴치법이 없었다니 황충에 의한 재난에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현대에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한발’입니다. 

장기간에 걸친 물 부족으로 나타나는 재난을 말하는 ‘한발’. 과학이 발전하지 않은 시대의 한발은 ‘하늘의 노여움’ 그 자체였습니다. 
역사적으로 ‘한발’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기우제가 거행되어 왔지만, 그중 ‘폭로의례’라는 기우 의례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뜨거운 태양아래 한 여인이 서있습니다. 무더위에 흐릿해지는 정신을 부여잡으며 비장하게 서있는 여인의 신분은, 무당!  작열하는 태양아래 무당을 세워놓고 고통을 부가하는 폭로의례입니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하늘의 동정과 연민을 자극하여 강우를 유도하려 했던 것인데요. 

중앙 관청 뜰에 무당을 모아  솜옷을 입히고   머리에 화로를 이게 했습니다. 이 가학적 행사에 대해, 세종 7년 예조가 아룁니다. 무당을 모아서 기우하는데 고열에 솜옷을 입히고 화로를 머리에 이게 하는 것은 신에게 기도하는 뜻에 어그러짐이 있사오니  이후로는 솜옷을 입히는 것과 화로를 이게 하는 것을 하지 말게 하고  3일 동안 정성스런 기도의식을 거행하도록 하소서

예조의 제안으로 행사의 가학성은 줄어들었으나  이러한 행사는 조선 중반까지 지속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왜 재난의 책임을 무당에게 돌렸던 걸까요? 

사실 ‘폭로의례’에서 재난에 책임을  무당만 진 것은 아닙니다.  근대 이전의 사람들은 재난을  통치자가 부덕해서 생기는 일로 여겼는데요. 때문에 ‘폭로의례’ 행사를 통해 임금에게도 재난의 책임을 물었습니다. 

왕의 폭로의례는  왕이 정전이 아닌 뙤약볕 아래 서있는  의례적인 행위로 이뤄졌는데요.  이렇게 왕이 정전을 피해 다른 곳에 있는 것을
‘피정전’이라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피정전이 국가의 기우행사로 빈번하게 거행되었다고 합니다. 임금도 쉽지 않습니다.

호랑이의 출몰, 메뚜기 떼의 습격,  시대적 가치관에 근거한 재난 극복 방법인 폭로의례까지!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극복 가능한 재난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니.  역사 속 재미있는 재난 이야기를 만나본 시간 어떠셨나요?

재난을 만나 두려움에 떨기보다 재난을 예방하고 관리 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나요? 
재난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안전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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