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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속 안전!더보기
우리 선조들은 긴급한 상황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소식을전달했을까요?
역사 속 안전을 통해 알아보세요
영상대본
안녕하세요! 역사 속 재난 사건을 통해 안전 의식의 중요성을 알려드릴 큰별샘 최태성입니다. 선조들은 어떻게 소식을 주고받았는지 알아보려고 하는데요,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소식을 전달했을까요?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폭우, 폭설, 태풍, 지진 등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난이었습니다. 우리 선조들 역시, 이러한 재난 대응에 어려움을 겪었는데요, 하지만, 미리 알고 사전에 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재난이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전쟁입니다. 사실, 한반도는 지정학적 위치와 주변 국가들의 세력싸움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자주 일어났었는데요, 특히나, 국경의 인접한 지역에 사는 백성들은 자연재해에 대한 우려보다 전쟁에 대한 공포감이 훨씬 더 컸다고 합니다. 전쟁이 재난이었던 셈이죠. 때문에 우리 선조들은 국경선 너머에서 호시탐탐, 우리 땅을 넘보는 적군들의 동태를 살피며, 그 상황을 한양에 알려야 했습니다. 뭐, 지금처럼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시가 급박한 소식을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봉수제도에 있습니다. 여러분 남산에 가보신적 있으십니까? 남산에 가면 조선 시대에 사용하던 봉수대를 볼 수 있는데요, 봉수대는 말 그대로, 횃불을 뜻하는 ‘봉’과 연기를 뜻하는 ‘수’ 즉, 이 횃불과 연기를 이용해 긴급한 정보를 알리던 그런 장소를 말합니다. 이 봉수제도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는데,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이 봉수제도와 유사한 제도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알려진 봉수제도는 조선 세종시대에 완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요. 하지만, 19세기 말에 새로운 통신수단인 전신과 전화가 도입되면서, 1894년 봉수제도는 폐지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봉수제도는 크게 5개의 연결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제 1봉수는 북쪽 끝 경흥 부근에서 시작해, 한양의 아차산으로 도착하고 제 2봉수는 남쪽 끝 경상도에서 시작해, 광주 천림산으로 도착합니다. 제 3봉수는 서북쪽 끝인 평안도에서 시작해, 한양 무악산으로 제 4봉수는 서북쪽 해안에서 오는 봉수를 무악산의 서쪽에서 봤습니다. 제 5봉수는 전라 충청에서 시작해, 양천의 개화산으로 도착합니다. 와.. 이렇게 전국에서 올라온 봉수가 마지막으로 목멱산 오늘의 남산에 모두 모이게 되는 것이죠. 남산 봉수대에서는 전국에서 받은 정보를 이 병조에 보고하고 병조에서는 매일 새벽 승정원에 보고해 임금에게 알렸다고 합니다. 북쪽 끝인 함경도 중앙에서 출발한 봉수가 아차산까지 도착하는데, 12시간 정도가 걸렸다고 하는데요, 다른 4개 봉수도 거의 비슷한 속도였다고 하는데, 이것을 계산해 보면, 봉수의 속도가 시속 100km 정도라고 합니다. 생각보다 빠르죠? 이 봉수는 단순히 불과 연기를 피우는 것뿐만 아니라 봉화의 개수에 따라 서로 다른 뜻을 갖고 있어, 개수로 정보를 파악했다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보통 때는 1개의 연기나 횃불을 올리고, 적이 국경지대에 나타나면 2줄기, 적군이 더욱 접근하면 3줄기, 국경을 넘어오면 4줄기, 마지막으로 우리 병사들과 싸움이 벌어지면 5줄기를 올려, 정보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봉수대에 왜 5개의 봉화가 있는지 그 이유를 이제 알 수 있겠죠? 봉화대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은 봉수군이라 불렸습니다. 첩첩산중에서 24시간 근무해야 했던 봉수군들은 부족한 식량으로 인한 배고픔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매우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험한 산길을 달려 다음 봉수대에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겠죠, 외롭고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봉화를 지켜준 봉수군들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선조들이 재난이나 긴급한 소식을 전하는 방법은 봉수제도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중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 바로 파발입니다. 여러분 모두 TV 속 사극에서 말을 타고 달려가 ‘어명이요~!’ 하고 소식을 전하는 모습 보셨을 텐데요. 파발에는 말을 타고 달려가 소식을 전하는 기발과 사람이 직접 걸어가서 소식을 전하는 보발이 있습니다. 보발은 마치 이 릴레이 경주를 하듯이 30리마다 쉬어가는 참이 있어서, 다음 사람에게 문서나 소식을 전달해주는 식이었고, 이 기발 역시 30리마다 참을 두어 말을 교체하며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파발은 문서를 직접 전달할 수 있어서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봉수대에 비해 ‘경비 많이 들고, 속도가 느리다’라는 단점이 있겠죠. 정보의 내용이나 경중에 따라 전달 방법을 선택하면 되겠죠? 여러분, 혹시 신호연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이 방패연을 이용해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인데요 이 신호연을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했던 분이 바로 이순신 장군입니다. 방패연은 띄우기도 쉽고, 이 연의 방향이나 높이를 조작하기 쉬운 아주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연인데요. 이순신 장군은 이 방패연에 다양한 문양을 넣어서 그것을 작전을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이 바다 위 여러 척의 배가 흩어져있는 상황에서 누구나 볼 수 있는 연을 통해 작전을 전달하는 방법은 꽤나 효과적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적장이었던 왜군의 풍신수길이 ‘이순신의 비연 때문에 패했다.’며 분통을 터트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로 신호연의 역할은 생각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재난은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국가적이고 국민적인 일입니다. 국민 모두가 같은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대비하고 대응하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에 필요시 긴급문자메시지가 발송되고 있는데요. 불과 120년 전만 해도 봉수대를 통해 나라의 안전을 확인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죠? 이 재난과 같은 큰일이 아니더라도 만약의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한 안전문제 같은 것들을 안전 신문고를 통해 신고를 하는 것도 안전한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 아닐까요? 우리 선조들이 그랬듯이! 우리의 안전은! 우리가 지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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