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전체메뉴

유형별 재난

계절별 재난

생애주기별 재난

프로그램별 보기

안전 유튜브

열린 안전한TV

정책소식

안전한TV 소개

  • 주간
  • 044-205-1070
  • 야간(당직)
  • 044-205-1600
  • 이메일주소
  • safetv@korea.kr

재난안전홍보

조선시대 빙하기의 재난 극복 이야기

2016-12-23 13:17:17.0

최태성쌤의 역사 속 안전. 여러분은 빙하기하면 어떤 것들이 떠오르세요?
조선에 빙하기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여러 재난이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한 당시, 우리 선조들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속 안전으로 만나보세요
더보기

영상대본

대본복사
여러분은 빙하기라는 단어를 들으면 뭐가 떠오르세요? 공룡? 원시인? 저는 조선 시대가 떠오릅니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단어 ‘빙하기와 조선 시대’ 왜 제가 ‘조선 시대’를 떠올렸는지 궁금하시죠?

과학의 발전과 함께 재난에 대한 적응력도 강해진 우리. 농약의 개발로 곤충과 전염병에 대한 대처가 가능해졌고, 댐의 발명으로 농업용수 부족으로 인한 피해도 줄었습니다. 조선 시대와 비교한다면 현대의 우리는 재난에 꽤 잘 대응하고 있는 건데요. 
그런데 만약에 우리에게  전염병, 가뭄, 우박, 흉년 등 다양한 재난이 한꺼번에,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난다면!  우리가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실제로 이 다양한 재난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때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럽에서 ‘소빙하기’라 불리는 17세기입니다.

13세기부터 시작된 이상기후. 특히 17세기 전후는  지구의 기온이 내려가면서 세계적으로 자연재해와 기근, 전염병이 만연했는데요. 
이상 기후로 사회가 혼란했던 이 시기를 유럽에서는 소빙하기라 부릅니다. 

소빙하기의 유럽은 위기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상 기후로 인한 농업의 쇠퇴는 개인의 재산 축적을 어렵게 만들었고 경제위기를 초래했죠. 
경제 위기는 30년 전쟁과 프랑스 네덜란드 전쟁과 같은 국가 간 분쟁을 일으켰죠. 이상 기후로 인한 다양한 자연적 재난이 곡물 가격 폭등과 경제위기, 사회 혼란, 전쟁 등의 사회적 재난을 불러온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대기근과 전쟁이 끊이지 않은 ‘위기의 시대’. 한반도로 가보겠습니다. 역사상 최대 기근으로 기록된 ‘경신 대기근’이 있었던 조선 시대 현종 11년과 12년.  이때 무려 100만 명에 이르는 인구가 기근이라는 재난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목숨을 잃는 재앙이 전쟁보다 심하여 백만 목숨이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었으니 실로 수백 년 이래 없던 재난이다.” 
조선왕조실록 현종 즉위 시 1670년 10월 15일의 기록입니다. 소빙하기라 불렸던 이상 기후가 조선에도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숙종 43년에서 45년에도 수차례 역병이 돌았는데요.  2천여 명이 병을 앓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던 ‘영·정조 르네상스’.  이 시기에도 이상기후로 인한 재난은 군주의 큰 골칫거리였는데요. 

한 세기가 지나도록 계속된 재난의 릴레이.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냈을까요?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이 어떠하였는지 유추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데요. 바로 ‘엉망’을 강조하여 이르는 말 ‘엉망진창’입니다. 
1671년, 현종 12년 2월 25일.  재난 때문에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죽을 나누어준 구제 기관인 서울 훈련원 설죽소에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납니다.  죽을 얻고자 몰려든 사람들이 서로 먼저 들어가려고 밀고 당기다가 80세 노파가 넘어져 밟혀 죽고  마는데요. 
팔순 노파가 깔려 죽을 정도로 굶주린 사람들이 떼로 몰려들어 아귀다툼을 벌이는 끔찍한 형국!  이 형국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 ‘엉망진창’이 탄생하였다고 하네요. 극심한 재난이 만든 진풍경이 이 단어의 어원이라고 하니,  그 느낌이 남다르시죠? 

조선 시대엔 국가 재난 발생 시  국왕을 보필하던 최고위 정치담당자인 ‘재상’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했는데요.  경신 대기근이라 불리 던 고난의 시기. 사후 대처에 급급했던 조선의 재난 관리 시스템을  사전 예방 시스템으로 바꾼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효종부터 현종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정부의 재난 관리와 대응을 주도했던  재상 정태화입니다!

다섯 차례나 영의정을 지낸 정태화는 위기를 기회로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관리자인 정태화가 집중한 것은 정책을 적절히 시행하여 민생 안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민생 안정을 위해 정태화는 대동법을 연안 지역뿐 아니라 내륙, 산야 지역 고을까지 확대 시행할 것을 주장합니다. 부자에게는 세금을 더 걷고 빈자에게는 덜 걷는 대동법을 확대 시행해서 흉년에 대비하고 백성들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려 했던 것입니다.  

또 정태화는 현종 2년,  물가조절과 기민 구제를 담당하였던 관청인 진휼청을   상설 기구화하는데요. 기근과 질병에 상시 대응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추기 위함이었습니다. 재난이 일어난 후 대응하는 것이 아닌 일어나기 전에 대비하고자 한 것이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역사상 최악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겠죠?
그의 재난 관리 방식을 현종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대처해 일을 그르친 적이 없다”고 평가했는데요. 
위기에 함몰되기보다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는 기회로 삼은 재상 정태화!

재상 정태화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의 노력으로 조선은 재난을 극복하며 발전하였습니다. 
확대 시행된 대동법은 특산물을 정부에 납부하던 이전 방식을 버리고 일정량의 쌀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는데요. 이러한 변화로 인해 ‘쌀을 주고 필요한 것을 사는’ 쌀을 화폐처럼 사용하는 화폐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됩니다. 
화폐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자 1678년 숙종 4년에 유통된 상평통보의 사용이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한 움직임이 도미노 효과를 만들어  상공업 사회의 기틀이 만들어진 건데요. 재난을 극복하는 과정이 조선을 농업 중심 사회에서  상공업 중심 사회로 변화시킨 것이죠. 

재난으로 인해 행정 구역 체계도 강화되는데요.  경신 대기근에 굶주린 백성들이 살던 고을을 떠나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유랑민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급증하자 촌락 단위로 주민을 관리하는 오가작통제와  신분 확인을 위한 호패법이 강화 시행됩니다. 

사회 체계와 의식 구조까지 변화시킨 재난 극복의 과정!  이러한 선조들의 노력 덕분에  소빙하기로 고통받았던  17세기 조선 시대는 
암흑기가 아닌   개혁의 시기로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영국 노섬브리어대학 태양 과학자 발렌티나 자르코바 교수 연구진은 태양의 활동이 2030년 무렵에 60% 감소해 10년 동안 소빙하기가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또다시 빙하기가 찾아온다면  우리는 잘 이겨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재난이 아니더라도 인생에는 언제나 위기가 있기 마련이죠. 인생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소빙하기를 극복한 선조들의 지혜를 떠올려 보십시오. 역사는 최고의 인생 교과서니까요.  
지금까지 재난 극복의 역사를 통해 안전 의식의 중요성과 감동을 전해드린 큰별샘 최태성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공누리 /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행정안전부가 창작한 안전한TV 저작물은 출처표시-상업적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개인 유투브 또는 SNS등에 안전한TV 동영상을 편집해서 올리실 수 없습니다.)

확인

아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