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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발생한 대형재난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 그리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 그때 그 재난입니다. 과거 2월에 발생한 대형재난에는 2014년 경주에서 발생한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그리고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가 있었습니다.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기억해 주세요.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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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리조트 강당 지붕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10년 넘게 의용소방대로 활동하며 봉사정신을 가르쳤던 어머니는 든든한 장남을 하루아침에 잃고 오열했습니다. [시민] 우리 딸내미가 있어요 지금... [정진항] ‘그때 그 재난’ 정진항입니다. 지난 2014년, 대학 입학을 앞둔 한 신입생이 학과 인터넷 카페 게시판에 자기소개 글을 남겼는데요, 11일 후 이 글은 처음이자 마지막 기록이 되고 말았습니다. 경남 진주에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려 기록적인 폭설을 기록했던 날. 부산외대 학생 560여 명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초대가수의 공연이 끝나고 한 시간 정도가 흐른 그 순간. 갑자기 체육관의 지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바로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비상구도 없는 체육관에서 학생들과 이벤트 회사 직원은 속수무책 재난을 당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1590여 명의 구조 인력과 104대의 장비가 동원돼 구조에 나섰지만 눈 쌓인 좁은 산길 도로에서 차량 진입에 혼선을 빚으며 구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결국, 10명의 사망자와 20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로 기록됐습니다. 그 날 재난의 현장에서 사투를 벌인 건 소방대원들만이 아니었습니다. [학생] 처음 1차 붕괴 때는 나왔다고 들었거든요. [정진항] 4학년 졸업반이던 양성호씨는 체육관 천장이 무너지자마자 창문을 깨고 후배들을 대피시켰고, 몇몇 후배가 보이지 않자 위험을 무릅쓰고 다시 무너진 철골 틈으로 들어가 필사적으로 구출을 시도했지만 2차 붕괴로 철골이 내려앉으면서 끝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후 구조된 학생들 증언에 따르면 붕괴된 건물은 정전이 되면서 암흑 속에 잠겼고, 다치지 않은 학생들은 친구들을 구하려 애썼지만 잔해더미를 치우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하는데요. 살아남은 학생들은 친구를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려야만 했고, 지금도 부산 외대에서는 해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추모식을 열고 있습니다. 대학 생활의 첫 행사였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이 최악의 악몽으로 변해버린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어쩌면 예고된 인재였는지도 모릅니다. 붕괴의 첫 번째 주요 원인은 하중에 취약한 철골 샌드위치 패널 구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경주엔 적설량이 50cm가 넘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는데요. 일반적으로 1제곱미터 면적에 1m의 눈이 쌓인다면 약 300kg 정도의 무게가 나간다고 합니다. 체육관 규모가 1205제곱미터였다고 하니까 대충 따져 봐도 지붕에 쌓인 눈의 무게가 180톤 정도로 어마어마했는데요. 쉽게 생각해 15톤 덤프트럭 12대 정도가 체육관 지붕에 올라가 있었던 셈입니다. 그러나 행사는 강행되었고 결국, 샌드위치 패널 지붕이 천장에 쌓인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것입니다. 조립식 건물이라고 해서 무조건 안전성이 떨어지는건 아니기 때문에 구조 설계에 문제는 없었는지, 시공은 잘 되었는지도 따져 봐야 하는데요. 당시 경찰 조사에서 설계도에 있던 지붕 H빔을 생략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마우나리조트는 2009년 체육관으로 사용승인을 받은 후 한 번도 안전진단을 받지 않았는데요. 평소 안전 관리에 소홀했던 업체는 기준치를 넘어선 눈이 쌓인 상황에서 제설작업도 하지 않았고, 어떤 안전장치 마련도 없이 행사를 진행시켰습니다. 결국, 사고를 예측하지 못한 안전 불감증이 참사로 이어졌습니다. 마우나리조트 붕괴 사고 이후 정부는 안전점검 사각지대에 있었던 수영장, 골프연습장 등의 체육시설들을 특정관리 대상 시설로 지정해 관리하도록 지침을 바꿨고, 이에 따라 체육시설은 반기별로 안전 점검이 법적으로 의무화됐습니다. 재난은 평범한 어느 날 예기치 않게 찾아오고, 대형 참사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하루를 앗아간 재난은 17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도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될 기억입니다. 2003년 2월 18일 오전.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내렸습니다. 바쁜 출퇴근 시간이 지난 오전 9시 30분 경, 지하철 안에서 1회용 가스라이터를 만지작거리며 내내 불안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대구지하철화재참사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방화로 시작됐습니다. 화재가 난 순간 다행히 1079호에 탑승했던 대부분의 승객들은 열려있는 출입문을 통해 대피했지만 그때 맞은편에서 중앙로역에 진입하던 1080호 열차에서는 오히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사망 192명, 부상 148명이라는 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대구지하철화재참사는 우리에게 많은 의문과 숙제를 남겼는데요. 맞은편에서 오던 1080호 차량은 왜 화재가 난 중앙로역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리고 왜 이 1080호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걸까요? 첫 번째 문제는 위기관리 시스템의 문제였습니다. 1079호 열차로부터 화재 사실을 보고받은 사령실이 화재 사고 대응에 갈팡질팡하는 동안 불은 삽시간에 번졌고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에 들어섰을 때 전력 공급마저 끊겨 열차 운행이 중단되었습니다. 설상가상 1080호 기관사가 마스터키를 가지고 현장을 빠져나가면서 지하철 문은 닫혔고, 승객들은 제 때 비상탈출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하철 사고 중 역대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이번 참사는 불에 타기 쉬운 내장재 사용과, 역사의 부실한 소방 설비, 운영기관의 안일한 대응, 기관사의 대처 능력 부족 등의 총체적인 부실이 키운 인재였습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사고 이후 전국의 지하철 내장재는 불에 잘 타지 않는 불연 소재로 교체되었고, 각 역사마다 비상유도등, 소방설비, 승객구호 장비함 등 방호도구가 비치되었습니다. 최근 한 언론사에서 지하철 래핑광고 시트지가 화재에 취약하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는데요,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시 해야겠습니다. 그 당시 참혹했던 현장에서 처절했던 그들의 마지막 외침을 우리는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잊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잘못된 과거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192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은 대구 지하철화재 참사도 신입생 환영식이 악몽으로 바뀐 경주 마우나 리조트 붕괴 사고도 결국 재난 대응 시스템 부재와 우리의 취약한 안전 의식이 부른 인재였습니다. 대형 재난이 다시는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안전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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